성경을 말하다

보이는 성경, 그 너머에 담긴 진실을 찾아서.

인생, 의미, 행복... 생명

카테고리 없음

(로마서 이야기 30)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

홀씨지기 2024. 5. 3. 20:00

로마서 4:15-22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위 본문은 앞선 편지들을 잘 읽었다면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필요한 분들을 위해 부연 설명을 붙여보겠습니다

 

 



 
.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롬 5:17-18)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사실상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99세가 되도록 아들을 주시겠다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라의 나이는 89세였고 생리가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육체적으로만 보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의 형편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도 언약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자 100세가 되었을 때 마침내 그 언약이 성취되었고, 고대하던 아들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자녀'는 그 자신의 분신과 같습니다. 특히 성경에서 '자녀'는 '열매'의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 의미로  '이삭'은 마지막 날에 열매로 드려질 아브라함 자신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반드시 '언약의 씨'로 태어나야 합니다. 믿음의  최종 열매는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날 자신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마엘 vs 이삭
 
'이삭'과 대비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스마엘'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사라의 여종이었던 하갈을 통해 얻은 자식입니다. 엄밀하게 보면 이삭보다 먼저 태어났으므로 아브라함의 장자로 불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장자로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그가 언약의 씨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노력으로 얻은 '가짜 열매'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비밀을 한 가지 알게 됩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한 진실입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노력의 산물, 즉 '율법의 열매'였습니다. 반면에  '이삭'은 율법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얻은 열매였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받으실 열매는 '이삭'입니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한지는 구원의 원리를 알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나의 노력과 헌신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을 내세웠다가는 100% 하나님께 거절을 당할 것입니다. 구원은 반드시 은혜의 산물이어야 합니다. 자격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형편을 한 번 그려 보세요. 어떤 모습인가요?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몸은 움직이지만 영적으로는 죽어 있는 시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 상태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상태가 바로 '바랄 수 없는 상태, 즉 죄인들의 한계 상황입니다.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이 겸손한 자세입니다. 그러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언약'을 간직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돼,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3-5)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될 자들을 '창세 전'에 이미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왜 보내셨을까요? 그의 은혜를 알고 찬양하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나요?  먼지 같은 미물에 불과한 나 자신 때문에 절망감을 느낄 때가 많은가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 마음이 드는 것이 오히려 영적으로는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의지하게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나같은 죄인을 택해 주시고, 언약을 붙들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게 느껴지잖아요. 나를 보지 말고 언약을 붙드세요. 그러면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바랄 수 없지만, 바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그 언약이 이루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