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말하다

보이는 성경, 그 너머에 담긴 진실을 찾아서.

인생, 의미, 행복... 생명

홀씨편지/로마서 이야기

(로마서 이야기 46)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홀씨지기 2024. 6. 19. 21:07

로마서 9:1-13 
01-0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0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0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0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0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0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0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 '복음'이 무엇인지를 전반적으로 변증한 바울은, 이제 더 깊은 복음의 바닷속으로 들어갑니다.  복음의  핵심 중의 핵심을 밝히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쓰인 글이 로마서 9-11장입니다. 

로마서 9-11장은 간단히 말해  '예정의 교리'를 설명한 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구원할 자들을 미리 정하셨다'는 교리입니다. 

교리에 대한 역사적 논쟁과 변천사를 다 언급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짧은 지면으로 그 내용들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럴 의도도 없습니다. 알고 싶다면 훌륭한 학자들이 쓴 책들이 많으니 찾아서 공부를 하면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예정이란 무엇이며, 그 안에 담긴 진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짧게 설명할 것입니다. 

'예정의 교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의 상관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교리입니다. 개인적으로  '교리'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위적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땅히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어 부득이하게 사용했습니다.  '예정의 교리'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 중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 많은 가짜 종교들과 기독교가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말해야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예정의 교리'를 시작으로 설명할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니 깊이 묵상해 볼 것을 권해 드립니다. 


신약성경

 

바울에게는 큰 부담감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신과 같은 핏줄인  이스라엘 민족을 부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습니다. 로마서를 8장까지 쭉 읽어 온 독자라면 바울이 줄 곧 이스라엘인들의 자랑인  '율법의 의'를 강하게 부정해 왔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이 일로 적지 않은 마음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비록 그가 전한 말들이 참이라고 해도, 같이 살아왔던 골육 친척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1-3)

위 본문을 쉽게 풀어보면,

"나는 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하는 내 마음은 근심과 고통에 쌓여 있습니다. 성령이 이것을 증명하십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설령 내가 그리스도께 저주를 받아 그와 끊어질지라도 내 형제들을  위해서 증언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비록 말하기 고통스럽지만 이스라엘 민족들을 위해 꼭 해야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었을까요?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롬 9:4-5)

이스라엘 민족은 영적으로 볼 때 혜택을 많이 본 민족입니다. 표면적으로 하나님의 양자로 세움을 입었고, 율법과 언약과 예배를 먼저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덮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그의 조상들의 계보를 통해 오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복음에서 멀어졌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통한 '자기 의'를 붙들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도 크게 어그러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폐하여지다(헬:에크핍토)'라는 말은 '떨어지다', '실패하다'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바울은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넘어졌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민족적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참 이스라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다 참 이스라엘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녀가 다 참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이 그 의미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참 이스라엘이었을까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자녀'입니다.  다시 '언약'이 등장했습니다. 

민족적 이스라엘은 참 이스라엘의 그림자요 모형일 뿐입니다. 즉 참 이스라엘을 설명하기 위해서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렇게 그들이 가고  대신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언약'을 받은 참 이스라엘입니다. 이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씨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언약백성'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당사자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으면 가능합니다. 민족적 차이, 나이, 성별, 피부색, 지식... 등 그 어떤 문화적 차이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택함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핏줄로 인정되면 하나님의 눈은 그만 향하시고,  손도 오직 그만 을 위해 일하십니다. 이것이 '예정의 교리'가 가진 기본적인 틀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인간들 편에서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편협하고 불공평하게 보일 입니다. 그래서 '예정의 교리'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수용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만 수용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