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7-12
0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0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0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은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 이리요.
믿음의 주체가 '인간의 선택'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주권'인가에 대한 논쟁은 기독교의 해묵은 논쟁 중 하나입니다. '인간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전능성'이 훼손되고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이라면 '심판의 당위성'에 대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본문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롬 11:8)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로마서 9장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찾아서 참고하세요)
위 본문은 이사야 29:10-11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사 29:10-11)
여호와께서 잠들게 하는 영을 선지자들에게 주시자 그들의 눈이 가려졌습니다. 그들은 소경이 되었고, 그들에게 성경은 봉한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뜻을 알 수 없는 책이 되고 만 것입니다.
성경은 문자로 되어 있어서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뜻은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주셔야만 보입니다. 그럼 면에서 볼 때 '믿음'은 인간 스스로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성경을 읽고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구원의 비밀을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말하면 존 웨슬리가 주장한 '선행은총론'을 꺼내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선행은총'이란 부패한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선행적으로 은총을 주셔서 인간 스스로 믿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믿음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고, 그 책임도 인간 스스로 져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옳지 않은 주장입니다. 먼저 성경 어디에도 '선행은총'을 주셨다고 언급된 말씀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 논리를 인정하는 순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한낱 인간의 선택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겸손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이 본래 '먼지'였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무릎 꿇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은 무지합니다. 인간은 우주의 끝이 어딘지 모릅니다. 우주의 소립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법칙대로 움직이는 지도 전혀 모릅니다. 시공간에서 살면서도 시간에 대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요? 오만한 죄일 뿐입니다.
유대인들로 하여금 실패할 수밖에 없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은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 이리요 " (롬 11:9-12)
유대인들로 하여금 실패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 이리요 "
이 사실입니다. 유대인의 실패로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 흘러 들어갈 수 있었고, 역으로 그 은혜가 다시 유대인들에게 임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수많은 유대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율법'으로 구원에 이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주시며 유대인들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셨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은혜'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율법'과 전혀 상관없이 살던 '이방인'들이 먼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 유대인들 중에 일부가 자신들도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이방인들처럼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먼저 이방인에게 베풀어졌고, 다시 그 은혜가 역으로 유대인에게도 흘러 들어간 것입니다. 지나고 나니 무엇만 남았나요? '은혜'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보이시나요?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을 모두 죄 아래 가두어 두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두 은혜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선행은총'과 같은 논리로 하나님의 의혜를 희석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패 따위로 영향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는 처음부터 세상을 완전하게 설계하셨고, 당신의 계획대로 이끌고 가시는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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