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25 - 8:4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0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0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0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0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8장을 읽기 시작할 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렇게 진입해야 문맥이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는 말이 끼어 있어서 흐름에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왜 삽입되어 있을까요?
바울이 감격에 벅찬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한 말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외치고 나서 그 답을 생각해 보니,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자신의 기쁨이 제어가 되질 않아서 내뱉은 말인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은혜에 젖어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던 절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온 자의 감격이 그의 마음 속에서 늘 끓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구원의 비밀을 깨달은 자가 부르는 찬미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지금까지 힘든 고개들을 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로마서 1장에서 시작해서 죄의 언덕을 넘어 왔고, 율법의 언덕을 넘었습니다. 언약신앙의 언덕도 넘었고, 십자가 죽음의 언덕도 넘었습니다. 정말 힘들게 넘어왔습니다. 그런데 다 넘고 보니 우리 앞에 그렇게 바라던 생명이 펼쳐져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문자로 표현된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의 정죄'가 없습니다. 생명의 법, 성령의 법에 의해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자유'를 얻습니다. 죄의 종이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시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예수의 몸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고 있던 '율법의 담'이었습니다. 그 담으로 인해 인간과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로 합쳐지지 못한 채 원수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해를 이루려면 반드시 이 담이 없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정죄하여 십자가에 달아 죽이셨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시자 담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막고 있는 장벽이 사라졌습니다. 왕에게로 가는 대로가 열렸습니다. 이 길은 화평의 길이요, 구원의 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율법의 담이 무너져 하나님과 화평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율법의 요구'를 적용받던 삶에서 '성령의 법'을 적용받는 삶으로 변환됩니다.
'율법의 요구'를 따르는 삶은 '육체로 사는 인생'입니다. 반면에 '성령의 법'을 적용받는 인생은 '영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이 둘의 인생은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전자는 죽은 자의 인생이고, 후자는 그러한 죽음에서 부활하여 '산 자'로 사는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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