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14-24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는 율법이 선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문제는 '죄 아래 팔려있는 우리의 육신(헬:사르크노스)입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롬7:14-15)
'죄 아래 팔려있다'는 것은 '죄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죄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나를 상상해 보세요. 정말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우리가 지금 그런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자연의 생태를 관찰해 보면 이와 유사한 예가 하나 있습니다. 보석벌의 일종인 '는쟁이벌'에 의해 온 몸이 마비가 된 바퀴벌레의 예입니다. 는쟁이 벌은 먹이인 바퀴벌레의 뇌에 신경독을 주입합니다. 독을 주입받은 바퀴벌레는 그 후부터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벌이 이끄는대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벌의 먹이가 될 줄을 알면서도 도망치지 못하고 벌이 이끄는대로 질질 끌려가기만 하는 것입니다.
이 바퀴벌레의 모습이 마치 죄 아래 팔려있는 인간의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선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죄가 이끄는 대로 행동하게 되는 인간의 처지와 닮아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그 바퀴벌레가 바로 나의 모습이라고 말입니다. 이 예시를 들면 대부분은 과한 비유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 실체를 알면 우리는 그보다 더 심각하면 심각했지 덜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벌레야 한 인생을 마감하면 흙으로 돌아갈 뿐이지만, 인간은 부활하여 영원한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요.
예수님께서는 눅5:31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병들었음을 아는 사람이 의사를 찾을 것이란 뜻입니다. 내가 현재 '죄 아래 팔려있다'는 사실과 그 심각성을 안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를 고쳐줄 수 있는 의사를 간절히 찾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죄를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썼던 바울도 매번 쓰러지는 자신으로 큰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몸부림 쳐도 도리어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자신을 보면서 크게 실망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9-20)
그는 자신을 악으로 끌고 가는 죄의 실체를 봤습니다. 그 죄가 자기를 이기는 힘이 있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스스로 아무리 몸부림 쳐도 죄를 이길 수 없는 자기를 깨닫게 되었을 때 그는 절망감에 쌓였습니다. 속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에 이끌려 가는 자기를 보며 그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이런 패턴에 상실감이 너무나 컸던 나머지 그는 마침내 절규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단발마의 비명은 죄 아래 팔려있는 죄인들이 외칠 수밖에 없는 애통입니다. 벗어날 수 없는 죄의 사슬에 묶인 자신을 보며 외칠 수밖에 없는 고통의 목소리입니다.
우리 주변을 한 번 둘러보세요. 온통 죄밖에 없습니다. 보석벌의 신경독을 맞은 채 자기 의지를 상실하고 죽음으로 향하고 바퀴벌레들만 우굴대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역시 같은 모습을 하고 살고 있는 나를 볼 때 어떻게 절규가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반전이 있습니다.
7장이 왜 8장 앞에 삽입이 되었는지 이유를 설명한 것을 기억하시나요? 극적 효과를 더하기 위해서라고 했었습니다. "오히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외치고 나서 롬7:25부터 다시 읽어 보세요. 왜 7장이 있어야 했는지를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 절규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아는 사람입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찾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구원의 길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두려울까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줄 새로운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닦아 놓으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의와 사랑의 법으로 통치하는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이 길을 열어 주신 아버지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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