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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편지/로마서 이야기

(로마서 이야기 73)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라

홀씨지기 2024. 11. 15. 13:22

로마서 16:17-20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로마 교회를 위한 바울의 마지막 권고의 말입니다.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가르쳐 준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는 이들에게서 떠나십시오.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기들의 배만 불리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말을 잘 분별하여) 선한 데 지혜롭게 행하고, 악한 데에는 미련하게 행하세요. 하나님께서 즉시 마귀의 세력을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한 마디로 거짓말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세력을 경계하라는 말입니다. 

당시에는 '율법주의'나 '영지주의'와 같은 사상을 복음에 접목시킨 '거짓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내에서 지도자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겉에서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속을 까보면 비복음을 전하는 위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주의'가 기독교에 혼합된 것을 '율법주의적 기독교'라고 부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의 십자가 은혜에 더하여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은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 율법적 사고에 젖어 있던 유대인들에 잘 먹혔습니다.  (참고: 갈 1: 6-7.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다른 복음'이 율법주의적 기독교를 지칭한 것입니다)

비슷한 경우로 '영지주의'를 기독교에 접목시킨 경우도 있었는데, 이를 '영지주의적 기독교'라고 부릅니다. 영지주의는 헬라 철학에 기반한 이분법적 사고 체계를 말합니다. '영'은 거룩하지만, 육은 완전히 더럽고 악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 사상이 기독교 교리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내에 접목된 '거짓 복음'을 가려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영지주의적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의하면 구원을 받으려면 육체적 욕망을 배제하는 극단적 금욕주의를 실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더러운 육체에 깃들일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 예수님의 육체가 일종의 환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소위 '가현설' 입니다. 이 교훈은 그리스 철학에 익숙했던 당시 지식인 층에 크게 어필하여 교회내에서 크게 퍼져갔습니다. (참고: 요일: 4: 1-3) 

바울은 그동안 로마서를 통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에 기반한 은혜와 그의 주권에 의해 주어진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이런 바울의 주장은 당시 거짓 교사들의 교훈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은혜와 더불어 인간의 의로운 행위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어떻게든 '인간'의 자존심을 세우려고 한 것입니다.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이 그런 의미로 쓰인 표현입니다. 이 말을 헬라어 원어로 보면  '부드러운 말', '축복해 주는 말' 입니다. 쉽게 말해  '사람이 듣기에 좋은 말'입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은 어떤 말입니까? 행위를 칭찬에 주고, 그에 따른 상벌을 약속해 주는 말입니다. 이런 말이 이해하기 쉽고, 동의하기도 좋습니다.  '율법주의'나, '영지주의'가 이런 인간들의 욕망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당시에도 그런 말을 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쉽게 따랐습니다.  


이런 '거짓 복음'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역사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교회를 가장 위협하는 세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슬람이나 불교와 같은 타종교의 확장일까요? 아닙니다. 기독교의 옷을 입고 교묘하게 활동하는 거짓  교사들이 훨씬 더 위험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은혜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율법주의'나 '영지주의'를 첨가한 거짓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라'는 말씀의 뜻이 이것입니다. 무엇이 진짜 선한 것인지, 악인지 올바로 분별하라는 말입니다.

'선하다(헬: 아가도스)'는 것은 히브리어로 '토브'를 번역한 단어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은 '하나님 자신' 외에는 없죠.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선을 대체할 수 없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데'에 지혜로우라는 것은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으로 이해하여 간직하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인간의 지식과 상식 수준으로 이해하지 말고 그 이면의 뜻과 진리로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수 밲번 강조해도 과한 말이 아닙니다. 그래야 '참'이 보이고,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악'은 왜곡된 말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적, 또는 인본주의적으로 풀어서 설명하면 성경은 그것을 '악하다'라고 책망하십니다. 성경이 지적하는 '악'의 실체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사탄을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신다'는 말씀 안에 숨어 있는 뜻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는 설명할 것이 많지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거짓 영' 또는 '거짓 말'이라고만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짓 영'이 마귀로 불리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성령'의 반대편에서 하나님의 말씀 역사를 방해하는 세력입니다.  그는 우는 사자처럼 세상 전역을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벧전 5: 8)

하지만  우리는 사탄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그의 머리를 밟아 버리셨으니까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사탄의 머리는 완전히 깨져버렸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사탄과 아무 상관없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에서 계속 가르쳐 온 복음이 주는 자유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눈을 뜨지 못한 이들에게 '사탄'의 존재는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마귀는 율법주의나 영지주의와 같은 인본적 사상을 가지고 교묘히 사람들 속에 파고 들어옵니다. 천사의 옷을 입고 교회 안에서도 활개를 칩니다.  때로는 설교자의 입술을 통해서, 때로는 성가대의 노래를 통해서 말입니다. 교회에서 전해지는 모든 말이 다 진실일 것이라고 쉽게 판단하면 안됩니다. 말을 분별하여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가 사탄의 활동을 다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활동을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 교회에서 만은 사탄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부지불식같에 들어오는 '거짓 복음'을 철저히 색출하여 쫓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라'고 하신 말씀을 잘 따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