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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편지/로마서 이야기

(로마서 이야기 69)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진 성도

홀씨지기 2024. 10. 30. 16:43

로마서 15:22-29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고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 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렸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로마서 펀지를 쓰고 있을 당시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의 당초 계획은 로마로 가서 잠시 교인들과 사귐을 가진 후 서바나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서바나(스페인)는 유럽의 끝에 위치하고 있어서 당시 사람들에게 '땅끝'이라고 여겨지던 곳이었습니다.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바울의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로마로 가려던 길이 여러 번 막혔을 뿐 아니라 현재는 마케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낸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야 하는 새로운 미션이 생긴 것입니다. 헌금을 전달하는 일 정도야 제자들의 손에 맡기면 되지 않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가 직접 가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을 구원의 열매로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확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구원이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진다는 거짓된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완전히 깨버리기 원했습니다. 이방인들이 회개하여 헌신적으로 헌금을 하는 모습을 통해 이방인 구원에 관한 논란을 종지부 찍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유대인들이 그에게 어떤 해를 가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잘 알려주는 구절이 사도행전 21:11-13에 나타나 있습니다.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띡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메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행 21:11-12)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행 21:13)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바울의 뜻을 극구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결심은 확고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자신은 이미 죽을 각오도 했다고 말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하겠다고도 말합니다. 

예루살렘, 로마, 서바나... 이 지명들이 당시 바울의 마음에 들어있던 이름들입니다. 바울의 마음은 이미 '땅끝'까지 향해 있었습니다.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렸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롬 15: 28-29)

무엇이 바울을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복음'입니다. '복음'을 알 때 받는 축복이 얼마나 큰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로마로 향하는 자신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자신에게 임한 하늘의 축복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소아시아와 유럽 전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한 바울의 삶을 단지 투철한 그의 사명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분명 복음 전하는 일을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복음을 받고 회개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인생의 기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기쁨이 그 모든 고초와 어려움들을 다 극복하고 죽는 순간까지 복음 전도자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복'을 전하는 자입니다.  '복'은  구원이고, 성령이고, 진리이며, 영생입니다.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 중에서 이보다 더 귀한 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을 전해주는 참된 성도야 말로  가장 가치 있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성도'로 부르셨다면 그 차체를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사람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복'을 전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은 늘 '서바나'로 향해 있게 됩니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명령이 그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 역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을 전하는 자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마음을 늘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사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