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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편지/로마서 이야기

(로마서 이야기 68) 바울이 자랑하는 것

홀씨지기 2024. 10. 25. 21:52

로마서 15:14-21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수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곳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지금까지 길게 복음을 설명한 바울은 자신이 왜 이 글을 썼는지를 밝힙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롬 15:15-16)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 그가 글을 쓴 목적이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이미 복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복음의 깊이를 더하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에게 깨닫게 하신 복음의 진수를 좀 더 자세히 알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복음의 변증서'라고 불리는 위대한 로마서가 탄생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로마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선물입니다. 우리는 로마서를 통해서 '복음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받는 원리는 무엇인지'... 등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매 순간마다 다시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에 눈을 뜨게 됩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때 매우 복잡하게 말할 수도 있지만 모든 가지를 다 제거하고 난 후 핵심만 설명하라고 한다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생명입니다. 세상에 없던 존재를 하나님께서 낳아 당신의 자녀로 불러주신 사건입니다. 

위 본문에서 '이방인을 제물로 드린다'는 구절을 보겠습니다.  '이방인'은 율법과 상관없이 살던 사람으로서,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자격미달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마지막 날에 드려지는 예물이 되었다면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말할 수 없는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그렇게  '이방인'으로 살다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영생에 이른 사람입니다. 왜  나였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이 엄청난 비밀을 말씀과 삶을 통해 발견하고 알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유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전달자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기를 자청하였고, 모든 힘을 다해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믿음의 결실을 맺기도 했구요. 그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일을 이렇게 자랑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롬 15:17-19) 


사람들은 자신의 힘이나 재력, 또는 업적을 과시하기 좋아합니다. 하지만 바울의 자랑거리는 달랐습니다.  그는 전도인으로 사는  자신을 자랑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복음에 순종하게 하기 위해 자신을 쓰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예루살렘부터 시작해서 세계 곳곳을 다리며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을 보면 알 수 있듯 바울은 소아시아 전역과  마케도니아, 그리스를 누비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숱한 죽음의 위협과 고생을 감수하면서도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전도의 일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람이 유일하게 자랑할 만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어둠으로 가득 찬 세상을 진리로 비추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굶주린 영혼들에게 영원한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일이며 역사를 돌리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이가 없으면 누가 복음을  들 수 있을까요?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모두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전도자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사 62:1-3)

 전도자로 산다는 것은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이 되는 것입니다.그의 손에 들린 찬란한 왕관이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단연코 없습니다. 

등불이 켜면 자연스럽게 주변을 비추게 됩니다. 이처럼  복음을 아는 이가 있으면 그 주변이 진리의 빛으로 밝아지게 됩니다. 성도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도자로 살았던 자신의 자세를 이렇게 밝힙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곳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5:20-21)

그는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에서는 활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거기로 가서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이들을 보게 하고, 깨닫게 했다고  합니다. 그는 편하게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아름다운 관'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자랑하시나요? 자신을 자랑하나요?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