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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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편지/로마서 이야기

(로마서 이야기 28)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

홀씨지기 2024. 4. 30. 18:45

로마서 4:1-8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버지입니다. 믿음의 본보기요 샘플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의 자취를 따라가면 올바른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김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는지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창15:6을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이 본문이 그 이름도 유명한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근본이 되는 구절입니다.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려다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4-5)

 

아브람은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불평이 많았습니다. 자신을 부르실 때 분명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었거든요.  그 날도 같은 이유로 하나님께 불평을 쏟아 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분명히 약속은 이루어 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자녀가 태어날 것과 그 씨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이가 많던 아브람에게 이 약속은 믿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자기 형편을 보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받으시고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가 무슨 큰 일을 하거나 업적을 남기지 않았음에도 오직 그의 믿음만 보시고 의롭다고 여겨주신 것입니다. 단순한 에피소드같지만 이 사건 속에 매우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브람의 때에는 율법이 없었습니다. 율법은 그가 죽은 후 약 400여년이 지난 후에 주어졌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는 성경책을 손에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가 믿음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2천년 전에 오신 예수와 그의 십자가 사건을 믿는 것을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속에는 우리가 아는 상식 이상의 깊고 깊은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진리로 말씀드려서 '예수'는 이 땅에 한 번만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창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줄곧 우리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아담의 때에는 '선악과'의 모양으로, 광야시대에는 '성막'과  '율법'으로, 왕정시대에는 '솔로몬의 성전'으로, 지금은 '바이블'의 형태로 말입니다.  2천 년 전에 오셨던 육신의 예수는 여러 모양 중에 한 형태였던 것이구요.

 

 

어렵지만 계속 들어보세요. 엄밀히 말해  아브라함이 '예수'를 모른 것이 아닙니다. 그 역시  '예수'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예수'는 언약의 씨로 태어났던 '이삭'이었습니다. 

 

 

의롭게 되는 원리

 

구원을 받는 원리는 '예수'가 죽고 그와 함께 영원한 씨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는 그렇게 예수로 죽고 새생명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죽어서 대신 아브라함이 새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이 죽지 않고 대신 숫양이 죽은 것은 인신공양을 막아주신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모리아 산에 번제로 드려진 이삭의 이야기는 따로 섹션을 마련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처럼 '예수'는 죽습니다. 예수는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눈앞에 있었던 모든 예수는 죽거나 파되되었습니다. 선악과도 사라졌고, 성막과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육신의 예수도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율법도 폐기되었습니다. 때가 되면 세상도 나의 육신도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새생명을 얻게 될까요?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를 깨달고 붙든 사람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이 이해되시나요? 그러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말씀처럼 자격 없는 자신에게 영생의 씨를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를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같은 죄인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든자가 복있는 자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갔던 믿음의 자취를  따라가는 삶이며,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